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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안의 채택·거절·수정과 창작 주도권

Pangram이 AI가 쓴 글을 꽤 잘 가려내는 걸 보고 놀랐다. 적어도 내가 본 결과는 그랬다. 사람과 AI의 문장을 구별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고 생각했는데, 탐지 도구의 결과는 예상보다 설득력 있어 보였다.

그 경험은 AI로 글을 쓴다는 일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어디까지가 도움이고, 어느 순간부터 대신 쓰는 일이 될까. AI와 함께 만든 글을 내 글이라고 부를 때, 내가 주장하는 몫은 정확히 무엇일까.

나는 AI가 혼자 내놓는 소설 아이디어에는 종종 지루함을 느낀다. 그런데 내 아이디어를 가져가 함께 발전시킬 때는 분명한 시너지가 있다. 이 두 경험이 한 사람 안에 함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글의 출처를 가려내는 문제에서 출발했지만, 결국 궁금해진 것은 글을 만드는 동안 내가 무엇을 선택하고 있었느냐는 것이다.

펼친 원고 위에서 연필을 든 손이 선을 이어간다. 여러 색의 종이 조각이 주변에서 모여들고, 일부는 한쪽에 남겨져 있다. 제안을 고르고 글의 방향을 정하는 과정을 표현한 일러스트.
여러 제안 사이에서 글의 방향을 이어가는 선택 · AI로 제작한 원본 일러스트

1 탐지가 알려주는 것과 남겨두는 것

Pangram을 보고 느낀 놀라움을 모든 글에 적용되는 정확도의 증명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다. 내가 본 결과가 인상적이었다는 경험과, 어떤 언어와 장르에서도 틀리지 않는다는 주장은 거리가 있다. AI 탐지는 글에 나타난 특징으로 생성 과정의 가능성을 추정한다. 한 작가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경로로 문장을 완성했는지를 그대로 읽어내는 작업은 아니다.

특히 공동 집필에서는 과정이 복잡해진다. 사람이 쓴 개요를 AI가 문장으로 풀었을 수도 있고, AI가 낸 초안을 사람이 전부 다시 썼을 수도 있다. 문장은 직접 썼지만 반전의 아이디어를 AI에서 가져왔을 수도 있다. 같은 ‘AI 활용’ 안에도 서로 다른 일이 들어 있다.

탐지 결과는 그중 일부를 확인할 단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결과만 보고 아이디어의 출발점, 수정의 이유, 작가가 포기한 대안까지 알기는 어렵다. 그 글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독자가 어떻게 읽을지, 공모전 규정을 지켰는지도 각각 확인해야 한다.

그래서 ‘AI가 쓴 것 같은가’라는 질문 하나에 모든 판단을 맡기면 빠지는 것이 많다. 문장이 어디서 왔는지 묻는 일은 중요하다. 나는 그 문장에 이르기까지 누가 방향을 정했고, 누가 다시 바꿀 수 있었는지도 함께 묻고 싶다.

2 공쿠르 논란과 서로 다른 허용선

이 문제가 추상적인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걸 보여준 사건도 있었다. 2026년 9월 25일, 공쿠르 아카데미는 Thélyson Orélien의 소설 C’était ça ou mourir를 1차 후보 명단에서 제외했다. AI 사용 의혹과 작가의 과거 다른 글에 관한 표절 문제가 함께 거론됐다. 정확히는 수상 취소가 아니라 후보 제외였다.

공식 발표는 여러 분석을 근거로 소설의 상당 부분이 AI 산출물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작가는 AI 사용을 부인했다. 따라서 이 사건을 ‘AI로 쓴 사실이 입증돼 상을 빼앗긴 사례’로 요약하면 실제로 확인된 것보다 앞서가게 된다. 탐지의 결과와 주최 측의 판단, 창작 과정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은 구분해서 읽어야 한다.

공모전마다 AI 활용을 다루는 방식도 다르다. 영국 브리드포트상이 현재 공개한 2026년 규정은 AI를 철자와 문법의 오류를 찾아내는 데만 허용한다. 창작 내용의 제안, 재작성, 구조 변경, 요약이나 생성에는 사용할 수 없으며, 창작의 구상과 표현, 구조와 문구는 모두 응모자 자신의 것이어야 한다고 정한다.

호주의 뉴캐슬 단편소설상 2026은 통상적인 맞춤법·문법 보조 도구를 허용하되, 생성형 AI로 창작 내용을 작성하거나 크게 바꾸는 것을 금지한다. 집필 과정에서 받은 AI의 도움은 모두 공개해야 한다. 사용 사실을 밝힌다고 해서 금지된 생성이나 수정까지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영국의 2026 ABSW Young Science Writer Award는 AI를 통한 글의 생성과 편집을 금지하면서도,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단계의 도움에는 제한적으로 여지를 둔다. 다만 AI가 글의 일부를 쓰거나 최종 문구를 실질적으로 형성해서는 안 된다.

문학상과 청소년 과학 글쓰기 대회는 목적과 평가 대상부터 다르다. 이들을 같은 기준으로 비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AI 사용 금지’라는 말 아래에서도 어디에 선을 긋는지는 직접 읽어야 한다는 점이 드러난다. 생성한 문장을 쓰는 일과 아이디어를 탐색하는 일을 같은 방식으로 취급하지 않는 곳도 있다.

내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용법과 응모하려는 곳의 허용 범위는 별개다. 내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협업이었다고 느끼더라도 규정이 금지하면 그 대회에는 낼 수 없다. 애매한 부분은 내게 유리하게 해석하기보다 해당 회차의 규정을 확인하고 주최 측에 물어야 한다. 창작에 관한 철학이 참가 조건을 대신해주지는 않는다.

3 저자의 죽음을 떠올리게 되는 이유

한편으로는 롤랑 바르트의 「저자의 죽음」이 떠오른다. 바르트는 작가의 의도나 전기를 작품의 의미를 확정하는 마지막 열쇠로 삼는 읽기에서 벗어나려 했다. 글은 여러 문화와 언어가 만나는 자리이며, 의미는 독자가 읽는 과정에서도 만들어진다.

이 관점으로 보면, 문장 뒤에 순수하고 단일한 창조자가 서 있다는 그림은 처음부터 그리 단순하지 않다. 사람이 머릿속에서 꺼낸 글에도 읽었던 소설, 누군가의 말투, 오래된 기억, 장르의 관습이 섞여 있다. 나만의 생각처럼 느껴지는 아이디어에도 남에게서 온 것이 들어 있다. 인간의 글쓰기도 어떤 의미에서는 리믹스다.

물론 바르트를 끌어와 ‘어차피 저자는 죽었으니 AI로 써도 상관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작품의 의미를 누가 결정하는가와, 작품을 어떻게 만들었으며 어떤 조건으로 제출했는가는 다른 질문이다. 독자가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다는 말이 출처를 숨기거나 남의 문장을 무단으로 가져와도 된다는 허락은 아니다.

내가 이 글에서 붙잡고 싶은 것은 오히려 리믹스 안의 차이다. 같은 책을 읽은 사람들도 전혀 다른 이야기를 쓴다. 무엇을 오래 기억했는지, 어떤 장면을 납득하지 못했는지, 어디에서 마음이 움직였는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재료가 이미 존재한다고 해서 그것을 엮는 선택까지 같아지지는 않는다.

AI와 함께 쓰는 글에서도 이 선택은 남아 있다. 다만 재료를 모으고 연결하는 일을 AI에게 많이 맡길수록, 내가 관여하는 지점이 어디인지 더 또렷하게 보아야 한다. ‘모든 글은 리믹스’라는 말은 저자성에 관한 질문을 끝내기보다, 내가 어떤 방식으로 섞고 있는지 묻게 한다.

4 무난한 아이디어와 내 아이디어의 다음 단계

내 경험에서 AI에게 소설 아이디어를 처음부터 내달라고 하면, 그럴듯하지만 무난하고 재미없는 방향으로 흐르는 경우가 있었다. 익숙한 설정과 익숙한 갈등이 만나고, 이야기의 모양은 갖추는데 내가 굳이 쓰고 싶어지는 이유는 잘 생기지 않는다.

나는 이런 느낌을 ‘보간’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미 본 것들 사이를 매끄럽게 이어 빈칸을 채우는 듯한 느낌이다. 여기서 보간은 모델의 작동 원리를 엄밀하게 설명하려는 용어가 아니다. AI가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없다는 선언도 아니다. 내가 받아본 제안이 어떤 식으로 평범하게 느껴졌는지를 설명하는 비유에 가깝다.

그런데 내 아이디어를 놓고 함께 발전시키면 경험이 달라진다. 이미 궁금한 것이 있고, 지키고 싶은 감정이나 관계가 있을 때 AI의 제안을 비교할 기준도 생긴다.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무엇이 어긋났는지 생각하다 보면 내가 하려던 이야기가 조금 더 분명해진다.

예를 들어 인물이 끝까지 사과하지 않는 이야기를 생각했다고 하자. AI에게 곧바로 줄거리를 맡기는 대신, 이 선택을 유지하면서 갈등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물을 수 있다. 화해로 마무리하는 제안이 나오면 거절할 수도 있다. 왜 거절하는지 생각하는 동안 ‘내가 궁금한 것은 화해가 아니라 사과 없이도 남는 관계구나’라는 방향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설명을 위한 가상의 예다.

그때의 시너지는 결과물에 AI 문장이 많이 남았는지와 꼭 비례하지 않는다. 제안 한 줄을 보고 다른 장면을 떠올렸다면 문장을 쓰지 않고도 도움을 받은 것이다. 반대로 제안을 길게 가져왔더라도 내 이야기에서 왜 필요한지 충분히 판단했다면 그 채택에도 창작적인 선택이 들어 있다.

내가 AI에게 기대하는 역할은 이런 대화에 가깝다. 내가 가진 재료에 반응하고, 예상하지 못한 연결을 보여주고, 내가 동의하지 않는 지점을 드러내는 상대. 무엇이든 빨리 완성해주는 능력보다 내 생각이 한 번 더 움직이게 되는 순간이 흥미롭다.

5 채택과 거절과 수정에 남는 판단

가상의 퇴고 장면을 하나 더 생각해보자. 원고에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문밖에서 발소리가 멀어졌다”라고 쓰여 있다. AI는 “그는 끝내 대답하지 못했다. 진실을 말하면 모든 것을 잃을까 두려웠다”라고 제안한다.

문장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받아들이면 독자가 짐작하던 침묵의 이유가 설명되고, 대답하지 않은 사람이 대답하지 못한 사람으로 바뀐다. 표현을 고친 것 같지만 인물의 의지와 독자가 알게 되는 정보도 함께 바뀐다.

작가는 그 변화가 마음에 들어 채택할 수 있다. 반대로 별생각 없이 매끄러워 보여 넣을 수도 있다. 편집 기록에는 둘 다 ‘채택’으로 남겠지만 같은 판단은 아니다. 거절도 마찬가지다. 침묵의 의미를 지키려고 버릴 수 있고, AI가 쓴 티를 줄이려고 단어만 바꿀 수도 있다.

수정한 글자 수로도 이 차이를 다 설명하기 어렵다. ‘못했다’를 ‘않았다’로 바꾸는 작은 수정이 인물을 다르게 만들 수 있다. 모든 단어를 다시 쓰고도 AI가 제시한 사건의 원인과 결말을 그대로 따라갈 수 있다. 얼마나 많이 손댔는지와 얼마나 중요한 결정을 했는지는 어긋날 수 있다.

Hwang 등의 2025년 연구에서 전문 작가 19명은 AI와 함께 짧은 글을 쓰고 자기 기여를 이야기했다. 참여자들이 중요하게 여긴 것에는 제안을 고르고, 고치고, 자기 글 안에 들이는 판단이 포함됐다. 연구진은 이를 ‘content gatekeeping’으로 설명했다. 글에 무엇을 들일지 정하는 일이 저자성의 감각과 연결된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Draxler 등의 2024년 연구는 다른 틈을 보여준다. 엽서 쓰기 과제에서 AI가 만든 글을 자기 것이라고 느끼는 정도와 자신을 저자로 표기하는 행동은 일치하지 않았다. 두 연구 모두 제한된 과제에서 얻은 결과다. 그래도 ‘내 이름이 붙었다’, ‘내가 직접 입력했다’, ‘내가 방향을 정했다’가 언제나 같은 말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게 한다.

6 내가 고르는 선택지는 누가 만들었을까

마지막에 내가 고른다고 해서 모든 방향을 내가 정한 것은 아닐 수 있다. AI가 제시한 다섯 가지 문장이 모두 인물의 두려움을 설명한다면, 나는 설명하는 방식만 고르게 된다. 침묵을 남기거나, 발소리만 쓰거나, 그 자리에서 장면을 끝내는 선택은 목록에 없다.

Doshi와 Hauser의 2024년 단편 쓰기 실험에서는 AI 아이디어를 제공받은 조건의 글이 평균적으로 더 창의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동시에 글들은 서로 더 비슷해졌다. 한 편의 평가가 좋아지는 일과 여러 작품의 다양성이 줄어드는 일이 함께 나타난 셈이다. 이 결과가 개별 작가의 주도권 상실을 직접 입증하지는 않지만, 좋은 제안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탐색이 충분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나는 AI와 함께 쓰는 도구가 완성된 문장만 더 많이 보여주기보다, 내가 다른 방향을 택하기 쉽게 만들어주면 좋겠다. 내가 원하는 장면의 역할을 짧게 적어두고, 그 기준으로 제안을 읽고, 채택하거나 거절하거나 고친 뒤에 다시 읽는 흐름이다. 다음 요청은 그 판단을 반영해 달라질 수 있다.

내 의도에서 AI의 제안으로, 다시 내 판단과 원고 다시 읽기로 이어지는 네 단계. 내 판단은 채택, 거절, 수정을 포함한다. 원고를 읽은 판단이 의도와 다음 요청으로 돌아가도록 화살표가 연결돼 있다.
의도와 제안과 판단이 되돌아가는 공동 집필의 흐름 · 본문의 설계 제안을 도식화

그림에 화살표를 뒤로 돌려 그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처음 세운 의도는 고정된 정답이 아니다. AI의 제안을 보고 더 재미있는 질문을 발견하면 처음 생각을 바꿀 수 있다. 원문을 유지하는 선택, 제안을 모두 숨기고 직접 쓰는 선택도 계속 열려 있어야 한다.

중요한 갈림길에서는 짧은 메모가 도움이 될 것 같다. “이유를 밝히는 시점을 미루려고 거절했다.” “인물이 두려워한다는 쪽으로 바꾸기로 했다.” 이런 기록은 나중에 글을 다시 읽을 때 이전 판단으로 돌아가는 손잡이가 될 수 있다. 다만 이는 내가 생각하는 도구의 방향이지, 효과가 검증된 처방은 아니다.

7 리믹스 속에서 내가 계속 고르는 것

모든 선택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소리 내어 읽다 호흡이 걸려 단어를 지우기도 하고, 왜 좋은지 말하기 전에 어떤 문장이 맞는다고 느끼기도 한다. 매번 이유를 적으라는 요구가 글쓰기 자체를 방해할 수도 있다. 필요한 것은 매 순간의 증명보다 중요한 선택을 알아보고 되돌릴 수 있는 여지에 가깝다.

Pangram을 보고 놀란 경험, 공쿠르 후보 제외 논란, 서로 다른 공모전 규정은 AI와 글쓰기의 현실적인 경계를 생각하게 한다. 바르트와 리믹스의 관점은 그 경계를 물으면서도 저자를 순수한 무에서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존재로 상상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나에게는 두 가지가 함께 중요하다. 어디에 글을 내는지에 따라 사용 사실과 규정을 정확하게 다루는 일. 그리고 실제로 쓰는 동안 내가 원하는 방향을 계속 묻는 일. 탐지 점수가 대신해줄 수 없는 부분이 여기에 있다.

AI가 내놓은 아이디어는 무난해서 지루할 수 있다. 내 아이디어가 AI와 만나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자랄 수도 있다. 나는 그 차이를 ‘AI를 썼다’라는 한 문장으로 접어두고 싶지 않다. 어떤 생각을 가져갔고, 무엇을 받아들였으며, 어떤 제안을 끝내 버렸는지가 궁금하다.

글이 머릿속에서 나올 때부터 이미 여러 목소리의 리믹스라면, 내 몫은 그 목소리들을 어떻게 이어가는가에도 있을 것이다. 다음 문장이 자연스러운지만 보지 않고, 내가 왜 이 이야기를 계속 쓰고 싶은지 돌아보는 것. AI와 함께 쓰면서도 놓치고 싶지 않은 선택이다.

참고한 글과 연구

사건과 공모전 규정은 2026년 10월 3일 확인한 자료를 기준으로 정리했다. 각 회차의 실제 응모 시에는 최신 공고를 다시 확인해야 한다.